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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높은 한인 자살률…예방 가능하다

전쟁에 참전했던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 박사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 다음의 세 가지 욕망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 죽고 싶은 욕망, 둘째 죽이고 싶은 욕망, 셋째, 누구인가에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   지난달 한인 자살 관련 기사를 읽으며 정신과 의사인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 지난해 한인이 LA카운티 전체 자살자의 3.4%나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살한 아시안 이민자의 절반을 한인이 차지했다. 이민자의 자살률도 모국의 자살률을 따른다고 한다. 한인 자살이 많은 것은 한국의 자살률이 최근 20년간 OECD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자살학 연구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일생에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은 10~18%고, 그중 3~5%는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였다. 오래전에는 조울증이나 우울증 환자의 15~19%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뇌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뇌전파물질이 발견되고 각종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자살률은 10% 이하로 줄었다.       한국은 어떨까? 1976~2004년 사이 발표된 주요 논문에 의하면,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환자의 13%, 타입1 조울증 환자의 28%, 타입2 조울증 환자의 33%가 심각한 자살 기도를 하거나 자살을 했다고 한다. 타입1 조울증이란 일생에 한번이라도 조증(manic episode), 즉 기분이 좋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하루에 세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고, 일이나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잘못된 판단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는 등의 상태가 약 일주일간 지속하는 심한 우울증 환자들이다.     타입2 조울증 환자는 일생에 한 번이라도 경조증 (hypomanic episode)을 경험했던 심각한 우울증 환자다. 대부분의 증세는 조증과 비슷하나, 기간이 약 4일간 계속되며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는 정서 변화가 심하고,불안감과 분노가 심해 자살 위험은 더욱 크다.     이런 환자들은 절대로 스스로 의사를 찾지 않는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약물도 거부하기 때문에 강제 입원이 필요하다. 필자가 카이저 병원에서 치료했던 한 백인 남성은 한 달에 한 번씩 필자를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었다. 결국 그는 부모님의 재산까지 많이 탕진했다.     이들 환자가 갑자기 우울 상태에 빠지는 경우 과거력이나 가족력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주요 우울증과 구별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항우울제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쓰는 경우에 간혹 자살 욕구가 더 심해지거나, 분노 감정이 커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들은 정서 안정제인 리튬(Lithium), 간질 치료제( Anticonvulsant), 또는 항정신제 약품에 잘 반응하고, 회복 후에도 지속해서 적은 양을 써 재발을  방지하는 예방 치료법도 사용한다. 미국과 서부의 일부 도시에서 상수도 물에 리튬을 섞은 결과 자살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을 만큼 리튬은 조울증 예방제로 효과가 크다.   그리고 ▶자살 욕구를 말하거나 위협할 때 ▶술이나 마약 사용이 갑자기 늘었을 때 ▶삶의 목적을 잃었거나, 흥미가 없을 때 ▶불안, 초조,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됐다고 생각될 때 ▶조절 불가능한 분노나 복수심이 생길 때 ▶분별없는 행동을 할 때 ▶심각한 정서의 변화를 보일 때 등의 위험 신호가 있으면 빨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뇌에서 분비하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에서 유래하며, 유전성이 강하다. 정신병은 장기의 병이지 결코 창피한 일이거나 마귀의 장난이 아니다. 한국도 적극적이고 신속한 치료를 통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자살률 한인 한인 자살 우울증 환자 조울증 환자

2023-01-18

[오픈 업] 높은 한인 자살률…예방 가능하다

전쟁에 참전했던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 박사는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 다음의 세 가지 욕망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 죽고 싶은 욕망, 둘째 죽이고 싶은 욕망, 셋째, 누구인가에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   지난달 LA중앙일보 1면에 실린 한인 자살 관련 기사를 읽으며 정신과 의사인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 지난해 한인이 LA카운티 전체 자살자의 3.4%나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살한 아시안 이민자의 절반을 한인이 차지했다. 이민자의 자살률도 모국의 자살률을 따른다고 한다. 한인 자살이 많은 것은 한국의 자살률이 최근 20년간 OECD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자살학 연구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일생에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은 10~18%고, 그중 3~5%는 실제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였다. 오래전에는 조울증이나 우울증 환자의 15~19%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뇌에 대한 활발한 연구로 뇌전파물질이 발견되고 각종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자살률은 10% 이하로 줄었다.       한국은 어떨까? 1976~2004년 사이 발표된 주요 논문에 의하면,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환자의 13%, 타입1 조울증 환자의 28%, 타입2 조울증 환자의 33%가 심각한 자살 기도를 하거나 자살을 했다고 한다. 타입1 조울증이란 일생에 한번이라도 조증(manic episode), 즉 기분이 좋고 자신감에 차 있으며, 하루에 세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고, 일이나 취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잘못된 판단 때문에 재산을 탕진하는 등의 상태가 약 일주일간 지속하는 심한 우울증 환자들이다.     타입2 조울증 환자는 일생에 한 번이라도 경조증 (hypomanic episode)을 경험했던 심각한 우울증 환자다. 대부분의 증세는 조증과 비슷하나, 기간이 약 4일간 계속되며 이런 환자들의 경우에는 정서 변화가 심하고,불안감과 분노가 심해 자살 위험은 더욱 크다.     이런 환자들은 절대로 스스로 의사를 찾지 않는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약물도 거부하기 때문에 강제 입원이 필요하다. 필자가 카이저 병원에서 치료했던 한 백인 남성은 한 달에 한 번씩 필자를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었다. 결국 그는 부모님의 재산까지 많이 탕진했다.     이들 환자가 갑자기 우울 상태에 빠지는 경우 과거력이나 가족력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주요 우울증과 구별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항우울제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쓰는 경우에 간혹 자살 욕구가 더 심해지거나, 분노 감정이 커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들은 정서 안정제인 리튬(Lithium), 간질 치료제( Anticonvulsant), 또는 항정신제 약품에 잘 반응하고, 회복 후에도 지속해서 적은 양을 써 재발을  방지하는 예방 치료법도 사용한다. 미국과 서부의 일부 도시에서 상수도 물에 리튬을 섞은 결과 자살이 줄었다는 보고도 있을 만큼 리튬은 조울증 예방제로 효과가 크다.   그리고 ▶자살 욕구를 말하거나 위협할 때 ▶술이나 마약 사용이 갑자기 늘었을 때 ▶삶의 목적을 잃었거나, 흥미가 없을 때 ▶불안, 초조,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됐다고 생각될 때 ▶조절 불가능한 분노나 복수심이 생길 때 ▶분별없는 행동을 할 때 ▶심각한 정서의 변화를 보일 때 등의 위험 신호가 있으면 빨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뇌에서 분비하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에서 유래하며, 유전성이 강하다. 정신병은 장기의 병이지 결코 창피한 일이거나 마귀의 장난이 아니다. 한국도 적극적이고 신속한 치료를 통해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자살률 한인 한인 자살 우울증 환자 조울증 환자

2023-01-03

[오픈 업] “우울증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을 보이는 아내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착한 남편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우울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고약한 병이다. 우울증 환자는 희망을 잃고, 슬픈 기분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계속되며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의학적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기력이 약해져 피곤하고, 입맛이 떨어지며 잠을 잘 수가 없다.(청소년이나 중년 여성에서는 반대로 식욕이 왕성해지고, 너무 많이 잠을 자는 바람에 비만이 되기도 한다)     마음과 몸의 변화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에도 지장을 준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이나 공부를 못하고 쉬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단순히 ‘정신과적 병’이 아니라 온몸의 질병인 셈이다.     이런 아내를 둔 남편들의 경우 직장 생활에 종종 지장을 받는다. 아이들은 “내가 엄마에게 무얼 잘못했을끼?” “엄마는 항상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어. 미워하나 봐”등 자기중심적인 의문을 가지며 우울증세를 보일 수 있다.   아내의 병을 이해해 환자를 돕겠다는 남편을 만날 때 내 기쁨은 크다. 이럴 때 나는 데이비드 번스 박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책을 권한다. 그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인지행동치료법(CBT)의 창시자 에런 벡 박사로부터 인간의 생각이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때 환자의 감정에 좋은 변화가 오는 것을 목격했다.     책의 한 사례다. 소아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세와 자살 충동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 최근에 자살한 자기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한 죄의식을 느끼며 자신도 따라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었다. 번스 박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 대신에 “원인 모를 이유로 동생이 죽었다”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그 후 환자는 우울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CBT, 상담치료와 함께 정신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많다. 우울병 때문에 식욕을 잃거나(또는 많아지거나), 전해질이나 지방대사에 이상이 오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약물치료는 필수다.     그러나 많은 정신과 환자들은 잘못된 정보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약물사용을 거부한다. 3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병으로 번스를 찾아왔다. 그녀는 항우울제나 다른 약품들을 거부했다. 그녀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두 가지 약을 번스 박사로부터 받았다. 하나는 진짜 약이고,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위약이었다. 의사는 두 가지 다 천천히 양을 올리며 복용하라고 지시했다.     몇 주 후 어느 날 그녀는 심한 부작용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그간 두통, 구역질 등으로 고생했다는 환자의 불평에 번스는 두 가지 약 모두가 위약이라고 말했다. 즉 환자는 자신이 상상했거나 잘못 들었던 부작용 등에 집착하면서 이를 몸의 증상으로 경험한 것이다. 정신과 약품에 대한 자신의 불안감을 깨달은 후에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나는 ‘다중 치료(biological-psychological-social- spiritual)’를 권한다. 육체적(약물, 운동, 식사), 심리적(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함), 사회적(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협조) 그리고 영적인 도움을 동시에 받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우울증 아내 우울증 아내 우울증 환자 정신과 환자들

2022-03-16

[오픈 업] “우울증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을 보이는 아내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착한 남편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우울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고약한 병이다. 우울증 환자는 희망을 잃고, 슬픈 기분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계속되며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의학적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기력이 약해져 피곤하고, 입맛이 떨어지며 잠을 잘 수가 없다.(청소년이나 중년 여성에서는 반대로 식욕이 왕성해지고, 너무 많이 잠을 자는 바람에 비만이 되기도 한다)     마음과 몸의 변화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에도 지장을 준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이나 공부를 못하고 쉬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단순히 ‘정신과적 병’이 아니라 온몸의 질병인 셈이다.     이런 아내를 둔 남편들의 경우 직장 생활에 종종 지장을 받는다. 아이들은 "내가 엄마에게 무얼 잘못했을끼?" "엄마는 항상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어. 미워하나 봐"등 자기중심적인 의문을 가지며 우울증세를 보일 수 있다.   아내의 병을 이해해 환자를 돕겠다는 남편을 만날 때 내 기쁨은 크다. 이럴 때 나는 데이비드 번스 박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책을 권한다. 그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인지행동치료법(CBT)의 창시자 에런 벡 박사로부터 인간의 생각이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때 환자의 감정에 좋은 변화가 오는 것을 목격했다.     책의 한 사례다. 소아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세와 자살 충동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 최근에 자살한 자기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한 죄의식을 느끼며 자신도 따라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었다. 번스 박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 대신에 "원인 모를 이유로 동생이 죽었다"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그 후 환자는 우울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CBT, 상담치료와 함께 정신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많다. 우울병 때문에 식욕을 잃거나(또는 많아지거나), 전해질이나 지방대사에 이상이 오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약물치료는 필수다.     그러나 많은 정신과 환자들은 잘못된 정보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약물사용을 거부한다. 3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병으로 번스를 찾아왔다. 그녀는 항우울제나 다른 약품들을 거부했다. 그녀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두 가지 약을 번스 박사로부터 받았다. 하나는 진짜 약이고,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위약이었다. 의사는 두 가지 다 천천히 양을 올리며 복용하라고 지시했다.     몇 주 후 어느 날 그녀는 심한 부작용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그간 두통, 구역질 등으로 고생했다는 환자의 불평에 번스는 두 가지 약 모두가 위약이라고 말했다. 즉 환자는 자신이 상상했거나 잘못 들었던 부작용 등에 집착하면서 이를 몸의 증상으로 경험한 것이다. 정신과 약품에 대한 자신의 불안감을 깨달은 후에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나는 ‘다중 치료(biological-psychological-social- spiritual)’를 권한다. 육체적(약물, 운동, 식사), 심리적(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함), 사회적(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협조) 그리고 영적인 도움을 동시에 받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우울증 아내 우울증 아내 우울증 환자 우울병 아내

2022-03-06

[잠망경] 꽃의 맛

옛날 정신과 수련의 시절에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Keep your chin up!(턱을 치켜드세요! - 힘내세요!)”라 한 적이 있다. 그 퉁명스러운 60대 여자는 그런 말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발칵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낯이 뜨거웠다.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건 마치도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가 말한다. 내과 의사가 배가 아픈 환자에게 아프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셈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하세요! 하는 싸구려 입버릇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will power, 의지력(意志力)’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게 뭔지 모른다며 설명을 해달라 해서, ‘will’은 의도(意圖), 즉 무엇을 원하는 상태라 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원하는 예를 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까지 침을 튀기면서 설명한다.   한자어 ‘뜻 意’를 생각한다. 의도, 의지 외에도 의사(意思), 의견(意見), 의욕(意欲), 의의(意義) 같은 말들이 입에 붙어 다닌다.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과 견해와 욕심과 옳음을 주장하고 싶은 법이다.   의미(意味, 순우리말로 ‘뜻’)에 ‘맛 味’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니까 의미라는 한자어는 대뇌 기능이 아니라 미각이다. 말초감각 중에 하나다. 사물의 뜻을 알기 위하여 꼭 그렇게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무엇이든 단무지를 곁들어 먹어봐야 한다는 재래식 중국적 사고방식이다.   사물의 의미라는 것은 개개인의 입맛처럼 주관적인 기능에서 태어난다. 삼라만상의 의미는 팩트가 아니라 미각적(味覺的) 해석일 뿐. 그것은 개인의 심리상태이기도 하다. 물리학을 제외한 우주의 객관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은 무의미하다. 무색, 무취, 무미(無味)!   ‘뜻’에 해당하는 ‘meaning’은 좀 드라이하다. 13세기에는 ‘기억하다, remember’라는 의미였다. 뜻은 연상작용에서 온다. 전인도유럽어에서는 의도, 의견, 생각이라는 말이었으니 이 또한 주관적 심리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철학의 거성, 칸트(1274~1804)의 ‘thing-in-itself, 물자체(物自體)’ 개념이 당신과 나 사이에 훌륭히 거론된다. 내가 은하수에 고춧가루라도 뿌려 맛보지 않아도 내가 자는 사이에도 은하수는 자체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은하수에 애써 부여하는 의미는 철두철미하게 무의미하다.   김춘수(1922~2004)는 그의 대표 시 ‘꽃’에서 꽃의 이름에 큰 의미를 하사했다. 이름이 없는 꽃은 한갓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1976년도 저서 ‘의미와 무의미’에서 그는 시의 무의미성을 성심성의껏 선포한다. 구태의연한 시적 자아의 설렘을 떠나서 언어의 즉물성(卽物性)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괜스레 물자체, 즉물성 같은 어려운 말을 해서 당신에게 좀 미안하다.   초현실주의 시류(詩流)가 나를 휩쓴다. 개꿈,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몽, 꿈을 각색하는 자각몽, 등등 모든 꿈과 초현실은 내게 각별히 유효하다. 김춘수가 초현실주의의 텃밭이었다는 생각을 간간 한다.   옛날 그 환자에게 니체의 명언을 풀이해서 설명해줄 걸 그랬다. “삶은 고통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그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라고. 니체가 신의 사망선고를 내린 후 삶의 니힐리즘에 대항하는 그의 초인사상을 알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줄 걸 그랬지, 정말.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의미 순우리말 초현실주의 시류 우울증 환자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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